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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이성산성 | 2008.05.07 09:07
  이름 : 관리자 | 홈페이지 : 추천수 : 154 | 조회수 :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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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산성은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 산 36번지 일대에 있는 포곡형(包谷形)의 석축(石築)산성이다. 표고 209.8m인 이성산에 축성된 이 산성은 한강에 접하여 있는 여러 성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인 중요성과 성내에서 발견되는 삼국시대 유물 등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중요시되어 왔다. 특히 인접하여 있는 풍납토성(風納土城), 몽촌토성(夢村土城) 등과의 연관관계는 초기 백제사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어 왔고 조선시대 초기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백제 한성(漢城)시대의 도읍지로 비정되어 왔다. 성벽의 높이는 6∼7m이고, 둘레는 1,665m이다. 성 내부의 면적은 약 160,361㎡으로 48,500평에 달한다.



  이성산성은 백제시대의 산성이 아닌 통일신라시대의 산성으로 밝혀졌고 200-300년 가량 사용되다가 산성의 기능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발굴되어 그 당시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발굴조사의 성과를 살펴보면 장방형 건물지 4기, 9각 건물지 2기, 8각 건물지 1기, 12각 건물지 1기 등의 건물지와 1,2차저수지,신앙유적등의 유구가 노출되었고, 간지가 기록된 목간(木簡)을 비롯한 목제품.철제품.토기.기와 등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묵서가 쓰여진 목간의 출토로 산성의 축조 연대가 밝혀지게 됐고 목제품과 철제품등의 농기구를 비롯한 그당시의 다양한 생활용구들이 출토되어 당시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많은 자료를 제공하였다.



  


  산성의 정상부 가까이에 있는 8각, 9각 건물은 장방형 건물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배치되어 있는데 동쪽의 9각 건물은 하늘에 제사지내는 천단이고, 서쪽의 8각 건물은 사직단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곳에서 4개소의 신앙유적이 발견되었다. 신앙유적은 건물의 폐기되고 난 이후 건물지의 초석위에난 초석 가까운 곳에 100∼150cm 크기의 돌을 세워놓고 주변에 잔돌을 쌓아놓은 형태인데 주변에서 인위적으로 부러뜨려놓은 토제, 철제마 등 총3,352점의 유물이 출토된 역사상, 학술상 중요한 유적지이다.



  이성산성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시기는 하남시 미사동에는 선사시대의 유적과 초기백제시대의 농경지가 조사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춘궁리 지역에도 역시 선사시대부터 주민들이 거주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1988년 고속도로 건설로 인한 발굴과정에서 이화여대 발굴단의 건물지 발굴에서 청동기∼초기철기시대에 이른 문화층이 발견되어 최소한 청동기시대부터는 이 지역에 주민들이 거주하기 시작했음을 알수 있다.



  삼국시대에 들어 이 지역은 475년까지 백제가 점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역사학자들이 이 지역을 백제 초기 도읍지의 배후 산성으로 보고있다. 한강을 끼고 있는 지리적 위치로 볼 때 이러한 견해는 타당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조선후기시대의 학자인 정약용(1762∼1836), 홍경모는 이성산성을 온조의 고읍으로 보았으며 왕궁은 광주고읍인 춘궁동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김정호는 1864년에 발간된 ≪大東地志≫에서 이성산에 백제의 성지가 있다고 하였다. 이병도, 천관우, 김용국 등도 하남위례성과 한성을 동일한 곳으로 그 위치를 춘궁동 일대로 비정하는 데에 견해를 같이 하고 있다.



  현재에는 근들어 최몽룡, 권오영은 백제의 도읍이 하북위례성→하남위례성→한산→한성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고 하북위례성을 중랑천 일대로, 한산을 이성산성으로, 한성을 춘궁동 일대로 비정한 고대사를 밝히는 중요한 사적으로 문화재청에서는 2000년 9월 16일 국가사적으로 지정하였다.



또한 산 정상에 약수터가 있으며 아이들과 가볍게 산책하기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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