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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광주향교 교산동 건물지 | 2008.05.07 09:05
  이름 : 관리자 | 홈페이지 : 추천수 : 193 | 조회수 : 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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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는 서당에서 공부한 15세 이상의 양반 자제를 교육하던 시설이다. 광주향교가 창건된 시기는 잘 알 수 없으나 원래 고읍<古邑> 서쪽에 있었는데 숙종<肅宗> 29년(1703)에 현 위치로 이건되었다고 한다. 광주향교는 마을 후면의 평지에 남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외삼문과 대성전을 잇는 직선축상에서 앞으로는 명륜당<明倫堂>과 서재<齋>·동재터가 있고 뒤쪽에는 대성전<大成殿>과 동·서무가 위치하여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 형식을 갖추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주심포계<柱心包系> 맞배집인데 전면에는 개방된 퇴칸이 있으며 측면과 후면에는 방화벽이 설치되어 있다. 장대석 기단 위에 세워져 있는 민흘림기둥 위에 공포가 결구되어 칠량<七樑>의 지붕 가구(칠량 지붕 가구 : 서까래를 받치면서 지붕 무게를 직접 받는 부재인 도리를 7개 사용하여 만든 지붕틀)가 짜 올려져 있다. 내부에는 공자<孔子>와 4성<聖>, 송나라와 우리 나라 20현<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공포의 형태나 가구 수법으로 보아 19세기의 건물로 추정된다. 동·서무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민도리 맞배집으로 전면에 개방된 퇴칸을 두었다. 내삼문은 솟을삼문 형식인데 익공<翼工>의 형태로 미루어 18세기 초의 건물로 추정된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익공계 팔작집인데 중앙의 6칸 대청 좌우에 툇마루가 달린 1칸 반씩의 온돌방이 있다. 서재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민도리 집으로 내부에 온돌방이 있고 앞쪽에 툇마루가 달려 있다. 광주향교는 경기 지역에서 유일하게 평지에 입지하고 있으며 동·서재와 동·서무를 모두 갖춘 큰 규모의 향교이다.



현재 하남시 교산동에 위치하고 있는 광주향교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수 없다. 다만, 1846년에 쓰여진 홍경모의 [남한지]에 의하면 '본래 교읍 서쪽 2리에 있었는데 숙종 계미년 (숙종 29, 1703년) 부윤 이제가 고읍터로 이건하였으며 산성(남한산성)에도 북쪽으로 10리'라고 쓰여있고, 비슷한 시기에 간행된 [광주부읍지]나 [광주부지]에도 똑같은 기록이 있으므로 장소를 옮겨 이건한 것만은 사실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고읍'이란 광주관아를 의미하므로 그당시에는 광주관아가 하남시 교산동 일대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관아가 하남에 있었다는 것은 광주의 행정 중심지가 하남시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향교의 기능은 제향과 교육 2가지 기능이 있었다. 따라서 향교의 건물도 이 2가지 기능에 맞돌고 축조되었다. 제향의 기능을 담당하는 건물로는 대성전과 동, 서무가 있고, 교육의 기능을 담당하는 건물로는 명륜당과 동, 서자개 있었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성위를 봉안하는 가장 중요한 제향의 기능을 가진 건물이고, 동,서무도 배위의 신위를 봉안하고 봉사하는 건물이다. 명륜당은 강학하는 교육의 중심 건물이고 동,서재는 학생들의 공부방이자 숙소이기도 하다. 그외 외삼문과 내삼문이 있었으며 향교에 따라서는 고직자, 반노청, 전사청, 포주등의 부속건물이 있는 경우도 있다. 광주향교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이와같은 배치이나 다만 현재는 석전재 때 희생을 준비하는 전사청, 그리고 제기고 및 동재가 없다. 광주향교의 동재가 언제 없어졌는지는 알수 없으나 [남한지]에는 동, 서재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남한지]가 쓰여진 1846년 이후에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광주향교는 경기 지역에서 유일하게 평지에 입지하고 있으며 동·서재와 동·서무를 모두 갖춘 큰 규모의 향교이며 입구에는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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