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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구산성지 | 2008.05.07 09:09
  이름 : 관리자 | 홈페이지 : 추천수 : 174 | 조회수 : 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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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에 천주교가 언제 전파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1801년 신유박해 이전에 정약종과 권일신등이 배를 타고 한강을 오르내릴 때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구산성지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그리스도의 참된 말씀을 전파하고, 신앙을 증거하다   박해의

월계관을 받아쓰게 된 성 김성우(聖 金星禹,안또니오:1795-1841)와 그의 동생 만집(萬集),

문집(文集1801-1868),그의 아들 성희(聖熙 1815-1868),만집의 아들 차희(次熙),경희(敬熙),

사촌인 김주집의 아들 윤희(允熙),최지현(崔祉鉉),심칠여(沈七汝)등 아홉분의 치명자를

기념하고 그 묘소를 모신 거룩산 땅입니다.



1984년 5월 6일에 교황 바오로2세에 의해 시성된 김성우 성인은 1833년 중국인 신부였던 유방제

신부로부터 세례성상를 받았으며, 1836년 프랑스 외방선교회의 첫 선교사제였던 모방(Maubaut),

나 신부가 입국하자 그해 한여름동안 성인의 집에 모셔 모방 신부가 조선의 언어와 풍습을 익히는

일과 전교활동의 도왔습니다.



성인은 기해박해(1839년)때 체포되어 "사학(천주교)의 괴수"로 지목되어 한양 포도청으로

압송되어 여러차례 혹독한 고문을 받으셨습니다.

포도청에서 형조로 이송되어 곤장과 치도곤 30대를 맞으며 배교하라는 재판관에게 아무런

굽힘없이 "나는 천주교인이요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을 것입니다."

라는 대답으로 그의 굳은 신앙심을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1841년 윤 3월 8일 치도곤 60대를 맞으며 배교할 것을 강요 받았으나 그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음을 안 관장은 윤 3월 9일 옥중에서 교수형에 처하였습니다.

성인의 나이 47세였으며 옥중에 갇힌 기간이 15개월이 지난 시기였는데 그의 유해는 후손들에

의해 비밀리에 거두어져 지금 이곳 성지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새남터"와 "양화진"을 제외한 순교자가 거의 옛 자취를 찾아 볼 수 없으나 이곳 구산은 150여 년 동안 잘 보존되고 부락민 모두가 이들의 후예들로 한곳을 지키고 있다는 데서 교회사에 크게 기념될 만한 곳이다. 망월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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